대부분은 똥글을 싸지르는데 활용하는 블로그지만 가끔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한국 현대사 연구노트 비슷한 것을 올리곤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똥글의 형식을 띤 위대한 연구의 메모라는 것인데... 어째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의욕적으로 써보려고 했던 <토익은 어떻게 우리의 짐이 되었나>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능력과 자료의 부족 때문에 나름의 의미 있는 글을 써내려가기가 어려웠다.

▲ 능력부족 때문에 쓰다 지우길 수십 번... 기안84를 이해합니다.
한국에서의 토익 정착과 형성 과정을 어떠한 틀로 썰을 풀어볼까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다. 중산층의 형성, 취직의 어려움, 샐러리맨의 탄생, 기업 문화로서의 외국어 등의 키워드 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구라를 쳐보고 싶었으나 그래도 1차 사료를 가지고 구라를 쳐야지 그냥 구라를 쳐대기엔 이 동네에서 배운 짬밥도 있고 해서 차마 할 수는 없었다. 이와 관련한 기업사(Business History)적인 접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구라를 칠 수 있는 토양이 매우 척박했던 것도 한 몫했다.
그래서 나름의 타협을 지은 것이 한국 신문 지면에 수록된 토익 광고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일단 광고 보는 재미가 쏠쏠할뿐더러 사진으로 어느 정도 포스팅의 볼륨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날로 먹으려는) 양스러운 마인드가 결정적이었음을 밝힌다. 사족을 덧붙인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 감퇴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은 휘발성이 강하다. 따라서 글이나 말로서 생각에다가 꼴을 부여해주어야 한다.(네 다음 정당화)

▲ 제8회 TOEIC 시험 안내 광고. 한국의 첫 토익은 1982년부터 시행되었다.

▲ 1986년 5월 1일 매일경제 광고. 점수를 직접적으로 묻는 카피문구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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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7월 28일 매일경제 광고. 유사 제품 성행과 강매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토익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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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학학습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성장하면서 학습기 시장이 형성되었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들이 들고 다니던 <닥터 위콤>역시 대표적인 상품이다.

▲ 1999년 12월 1일 한겨레신문 기사. 이x찬의 악몽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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