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정치의 관계는 이제는 상식에 가깝다. 특히 축구의 정치성은 더더욱. 길게 썰을 풀 시간은 없고... 기사중 흥미로운 부분을 갈무리 해둔다. 언젠가 학교 수업에서 애들이 졸려할 때 썰을 풀 수 있겠지.
문제는 그 이후다. 양귀비꽃의 의미가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몰자 추모 정도에만 한정됐으면 괜찮았다. 하지만 영국은 양귀비꽃의 의미를 확산시켰다. 영국군을 미화하는 상징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반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일랜드 국적의 제임스 맥클린(웨스트브로미치)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2012년부터 양귀비꽃을 도입했다. 11월 11일을 즈음한 경기에 모든 선수들에게 양귀비꽃 문양이 박힌 유니폼을 준다. 경기 전 대형 양귀비꽃 조형물을 놓고 묵념도 한다. 단 한 명 예외가 매클린이다.
맥클린은 EPL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양귀비꽃을 달지 않는다. 많은 영국인들이 맥클린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유가 있다. 그는 북아일랜드 런던데리(데리)에서 태어났다.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이곳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영국군은 카톨릭교도 차별을 반대하는 북아일랜드 평화 시위대에게 발포했다. 무고한 시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13명이 다쳤다. 당시 영국은 시위대가 먼저 공격했다며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0년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 사건이 비무장 시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임을 인정했다. 공식 사과도 했다.
데리 출신인 맥클린에게 '양귀비꽃'은 자신의 동포를 학살한 영국군의 상징과도 같다. 그는 "양귀비꽃이 1,2차대전 전몰자를 추모한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국 군인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내가 이를 거부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맥클린과 같은 이유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시기 양귀비꽃 다는 것을 거부하곤 한다. 스포츠 조선, "이건의 발품스토리 英-FIFA, 양귀비 전쟁 그 이면의 이야기들" 中
반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일랜드 국적의 제임스 맥클린(웨스트브로미치)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2012년부터 양귀비꽃을 도입했다. 11월 11일을 즈음한 경기에 모든 선수들에게 양귀비꽃 문양이 박힌 유니폼을 준다. 경기 전 대형 양귀비꽃 조형물을 놓고 묵념도 한다. 단 한 명 예외가 매클린이다.
맥클린은 EPL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양귀비꽃을 달지 않는다. 많은 영국인들이 맥클린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유가 있다. 그는 북아일랜드 런던데리(데리)에서 태어났다.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이곳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영국군은 카톨릭교도 차별을 반대하는 북아일랜드 평화 시위대에게 발포했다. 무고한 시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13명이 다쳤다. 당시 영국은 시위대가 먼저 공격했다며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0년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 사건이 비무장 시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임을 인정했다. 공식 사과도 했다.
데리 출신인 맥클린에게 '양귀비꽃'은 자신의 동포를 학살한 영국군의 상징과도 같다. 그는 "양귀비꽃이 1,2차대전 전몰자를 추모한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국 군인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내가 이를 거부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맥클린과 같은 이유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시기 양귀비꽃 다는 것을 거부하곤 한다. 스포츠 조선, "이건의 발품스토리 英-FIFA, 양귀비 전쟁 그 이면의 이야기들" 中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611100100079630005231&servicedate=20161109 ← 기사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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