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외교관으로서 기지촌 여성? 휘발 직전의 단상


오늘밤은 무엇을 읽을까 하다가 캐서린 문의 <동맹속의 섹스>를 골랐다. 허구헌 날 주한미군 축출을 부르짖던 양반을 블락한 기념으로 읽게 된 것은 아니다. 본서의 연구대상은 기지촌 여성이며 1970년대 SOFA의 자료를 주로 이용했다. 기지촌 여성을 부르는 다른 이름으로는 바 걸, 호스티스, 특수 엔터테이너, 비즈니스 우먼, 위안부가 있었다. 양갈보와 양공주같은 경멸 섞인 이름도 있었다. 캐서린은 미군 상대 한국의 매매춘을 여성들만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시각을 거부한다. 그것은 한국과 미국 두 정부에 의해 후원되고 규제되는 체계라는 것이다. 캐서린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적고 있다. 

우리는 외교관계를 짙은 정장을 입은 엘리트 남성 집단에 의해 만들어지고 실행되는 일련의 정책들로, 개인의 삶, 특히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층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그런 계층에 속한 기지촌 여성은 사실상 1970년대 미국과 한국 관계자들 간의 긴장과 협상에 매우 불가결한 부분이었음에도 보이지 않고 침묵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나는 이 두 부분을 함께 엮음으로써, 사람 사이의 사적인 관계와 정부간 외교 관계가 어떻게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는지 드러내고자 한다. 캐서린 문, "머리말", 동맹 속의 섹스, 20쪽.  


기지촌이라고 했을 때 내 마음 속 심상지리가 바로 형성되는 것은 어릴적 추억 때문이다. 우리집은 명절마다 조부모가 묻히신 경기도 포천과 고모가 계신 경기도 연천 지역을 돌아보고 오곤 했다. 지금이야 길이 잘 닦여있지만 당시에는 집으로 돌아오려면 반드시 동두천과 의정부를 거쳐야 했다. 명절과 교통 신호 쌍크리를 맞으면 꼼짝없이 차창 밖으로 거리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커다란 장갑차가 지나가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걸어가던 미군이 보였다. 그러나 이 책의 주된 관심사인 여성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대로변이 아닌 골목 어귀에 그들은 있었을 것이다. 설사 대로변에 있을지라도 90년대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했다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운동가들에게도 이들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관심은 1990년대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두레방을 만든 문혜림은 "학생들은 종종 반미주의자가 되어 시위할 때면 양키 고 홈을 외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한국에 있는 미국 기지촌을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그들은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억압에 관해 알지 못한다."고 적고 있다. 학생들은 1990년이 되어서야 이곳을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기지촌 매춘 여성들에게까지 연대를 넓혀 나아가기 시작했다. 30쪽.

▲ 출처: 주간조선

▲출처: 오픈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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