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학문화와 개인주의의 사이에서, 2000년대 초반 학번 텍스트라는 감옥

1980년대 저항가요 테이프. 하나같이 ssen 문장들...
출처는 위키피디아

 
 
  우리가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배웠던 것은 신명나는 춤이나 율동 그리고 노래들이었다. 신입생 환영회 때 우리는 해방춤이나 농민춤, 길놀이 그리고 서정적이면서 과격하지 않은 투쟁가를 따라 배우기 시작했다. ... 하지만 이러한 의례는 대학의 어느 공간에서나 볼 수 있던 일상적 관습이었다. 대중가요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이나 이별에만 익숙하던 우리는 4박자춤과 행진곡풍 노래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과 집단적인 정체성을 하나씩 알아갔다. ...하지만 누구나 쟁가와 풍물 혹은 운동적 의례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낯선 가사와 몸짓, 어떻게 생각하면 과격하다고 느껴지는 쟁가의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무척 많았다. 신입생 시절 우리 동기들이 처음 MT를 갔을 때 일이다. 가서 술 마시고 이런 저런 어색한 얘기를 하다가, 유흥의 시간이 돌아오자 준비한 엠프를 가지고 춤추는 시간이 있었다. 이것을 둘러싸고 반대하느 사람, 찬성하는 사람으로 가랄져 감정이 상하기도 했고, 이 사건이 선배들 귀에 들어가서 한바탕 소문이 소동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김원,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45~46쪽)


 
  나의 학부 시절을 돌아보면 80년대 학번이 만들어온 교내 문화가 끝나가고 개인주의적인 학내 분위기가 막 형성되는 시기였다. 조금 과장 섞어 말하자면 막걸리집이 나간 자리에 커피숍이 하나 둘씩 들어섰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내 주변에는 80년대의 문화들이 유령처럼 존재했다. 사실은 그것이 주류임에도 내가 비주류여서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그때에도 나는 무리지어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혼자 찾아보고 좋아하는 덕후 스타일이었던 것 같은데... 민중가요 꽃다지의 "전화 카드 한 장"을 듣고서 '띵곡이야 띵곡'에서 80년대 대학생의 에토스를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부채의식' '죄의식' 뭐 그러한 성격의 심리 상태를. 확실히 우리 세대는 '동지'라는 표현보다는 '동기'라는 단어에서 소속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전화 카드 한 장'속의 화자가 말하는 동지의 개념이 주는 울림이 우리의 '동기'와 묘한듯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여준 너의 전화카드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 마디는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내겐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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