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과 박정희 휘발 직전의 단상


  오랫만에 역밸에 똥글 투척. 일전에 진주성에 놀러갔을 때 진주성 내에 자리한 충렬사에서 박정희가 남긴 비문을 보았다. 흥미롭게도 대통령 신분이 아닌 1962년 국가 재건 최고 회의 의장 신분으로 진주를 방문했을 당시에 남겼던 것이다. 이걸 보는 순간 진주성에 대한 단편적인 감상들이 퍼즐 끼워 맞추듯 옳다구나 요시! 하는 느낌이 왔다. 남강이 흐르는 평화로운 구도심의 모습과 대비되게 진주성 안에는 민족주의적인 상징들로 도배되어 있었던 것이다. 3.1운동 기념비, 한국전쟁 진주 전투 기념비, 논개 기념 사당 등이 어지럽게 들어와 있는 이 곳은 어떻게 개발이 되었을까. 하지만 일부 진주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현미의 '짜라짜짜'를 크게 들으며 파워워킹을 시전. 



  
  검색해보니 지금과 같은 진주성의 모습은 1970년대 진주성 복원사업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미 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것과 관련하여 초기(?) 박정희가 어떠한 생각으로 진주를 방문했던 것인지 궁금하여 옛날 신문을 뒤져보았다.

  진주의 관광 개발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당시 집권자들에 의해 적극 추진되었다. 실제로 관광객들이 한국을 들를 것이라고 집권층이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헬조선을 대체 왜 지역 개발의 좋은 명분임에는 분명했다. 1961년 10월 29일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경남도는 내후년(1964년) 가을에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 선수 및 관광개들의 집단 또는 개별적인 관광 예약을 받기 위하여 관광개발사업을 진행중에 있다. ... 경남도 관광당무자는 ... "내후년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 대회에 참가했다가 귀로에 들를 외국인 집단 관광객들의 예약신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내후년 올림픽에 참가할 관광객들 중 적어도 일만명은 유치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1백억 환의 외화획득을 목표로...박정희 의장으로부터 "내후년 일본올림픽 대회 전에 관광시설을 완비시키라."는 특별지시에 따라 전기 5개년 계획을 2개년 계획으로 단축시키는 한편 20억환 씩을 50억환씬 방출키로 되었다 

 박정희는 이후에도 진주를 꾸준히 방문하였다. 1962년 11월에는 13회 개천예술제가 진주에서 열렸다. 이름부터가 스멜이. 지역 예술제에 친히 참석한 박정희는 "예술의 진흥이 민족 문화 발전의 기반"이 되며 이를 통해 건전한 국민 문화 창달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당시 돈으로 7백만원이라는 예산이 집행된 본 행사에서는 논개와 임진왜란 당시의 삼장사 그리고 육만 장졸에 대한 제향을 올렸다. (1962년 11월 15일 동아일보  "개천예술제 개막") 사진 속의 비석은 이 때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에도 박정희는 진주를 자주 순회하며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남강 댐 개발 공약과 실행이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 

  실제 올림픽 이후 관광객이 얼마나 한국을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주 개발이 한 축에서는 민족주의적 상상력이 다른 한 축에서는 식민 지배국에서 개최된 올림픽을 타겟으로 진행된 점은 흥미로웠다. 네 저만 흥미롭습니다. 

덧글

  • 남중생 2018/01/24 21:05 # 답글

    흥미롭네요 ㅎㅎ
  • 섹사 2018/01/24 22:38 #

    ㅋㅋㅋ 감사합니다.
  • 聖冬者 2018/01/25 03:46 # 답글

    저런건 사실 예사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뒤벼리(진주8경중 하나로 절벽으로 이루어진 드라이브 코스)에서는 절벽을 깎아서 대놓고 페인트로 '멸공 방첩'이라고 썼기도 했었습니다. 김대중 때 가서야 망사와 덩쿨을 깔아서 가려버렸고 역사 속에 사라졌죠.
  • ㅇㅇ 2018/01/25 05:51 # 삭제

    금강산 바위에 글자 새긴 김씨왕조하고 똑같은 수준이네요 ㅋㅋㅋㅋ
    저쪽동네는 김씨일가 신격화, 이쪽동네는 반공이 주 장사 수단이라는거야 주지의 사실이지만 수준마저도 비슷할줄이야....
  • 聖冬者 2018/01/25 10:23 #

    거기에 대한 가치판단은 하기 싫지만, 진주 오래 살았던 입장에선 꽤 눈에 들어왔던 기묘한 장면이었었죠.

    글씨는 더럽게 크긴 했지만(글자 하나가 거의 뭐 사람 키 크기) 사실 존재감 자체는 없었습니다. 위치 자체가 맨 끝자락에 구석에 짱박혀 있는지라...
  • 섹사 2018/01/25 11:07 #

    멸공 방첩이라니... 으으...
  • 남중생 2018/01/25 12:38 #

    덤불로 가릴것까지야...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저걸 재발견하려는 시도가 나올걸 생각하니;;
  • 聖冬者 2018/01/25 12:44 #

    가린 지 10년도 더 넘었습니다. 찾는 사람은 없죠. 이제 그 역사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구요. 아마 덤불 다 덮어도 페인트가 다 벗겨지거나 해서 흔적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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